[책] 수학은 암기다
의도는 좋았지만, 수학은 암기가 아니다.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는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수학은 암기다?"
과연 맞을까? 저자도 아닌 것을 알 것이다. 책을 팔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한 과정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학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수학이라는 학문을 입시를 위한 수학으로 판단하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저자의 경험과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책의 제목과 내용의 구성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훗날 스스로도 이 책에 대해 후회하리라 생각한다.
수학은 암기가 아니다. 이해도 아니다.
수학은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이해와 암기가 모두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건데, 학생들은 암기 또는 이해 둘 중 하나를 하기 싫어하고 어떻게든 편하게 하려고 한다.
문제는 편하게 공부하려는 자세에 있지, 학문적으로 암기냐 이해냐로 단정짓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치동의 특수성도 한 몫한다. 기본적으로 학업 의지가 강하고 뛰어난 학생들 중에는 암기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 암기를 강조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상당히 크다.
'이런 것 까지 외워야 하나요?' 하는 것까지 모조리 다 외운다면? 당연히 시험이라는 환경에서는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한 확신도 높다.
나 또한 학군지 지역의 학생에게는
"암기한 내용이 많을수록 시험에서는 무조건 유리하다." 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젊은시절 암기를 혐오하며, 오로지 이해만을 숭배하고 문제를 해결해려했던 과거를 소개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학습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존감을 드높일 수 있을 지라도, 시험 점수나 효율면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교육환경에 따라 암기를 강조하는 모습은
굉장히 위험한 곳도 있다.
저자의 주 경험을 형성한 대치동과
전혀 반대인 곳에서 그렇다.
저자에게는 다양적 교육적 환경에 대한 경험 부족의 한계가 있음을 알고 접근해야 한다.
애초에 교육환경에서 열악한 지역은 공부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떨어진다. "암기"의 "암"자만 들어도 정말 "암" 걸린 듯이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사교육을 받을 기회도 주변에서 찾기 어렵고, 형편도 굉장히 어렵다.
이런 학생들에게 암기해야 된다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학생들에게 "수학은 암기다" 라고 했을 때, 얻는 이득은 거의 없으며,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만 더 늘고, 거부감을 키울 수 있다.
이 책은 또다른 수학에 대한 오개념을 형성하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단정적인 목차들로 독자의 시선을 끌어들였을지라도, 그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를 겪게되는 학생들을 책임져주지는 못한다.
수학은 암기다?
수학은 개념이다?
수학은 선행이다?
수학은 문제풀이다?
수학은 시험이다?
수학은 오답체크이다?
암기, 선행, 개념, 문제풀이, 시험, 오답체크. 그냥 사실 우리나라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들이다. 수 많은 돈을 투자하여 사교육을 하는 학부모에게 '당신은 지금 돈 쓸 곳에 제대로 돈 쓰고 있으니 계속 많이 돈을 쓰면 된다.'라고 격려를 해주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여서 슬픈 교육의 현실이다.
하지만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구매자 분포를 살펴보면 알수 있다. 다행히도 이책은 스스로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학공부를 하는 학생들, 수학이 중요한 수험생들은 이 책을 얼마나 구매했는가? 0%에 가깝다.
그들은 왜 구매하지 않을까?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책이고,
수학을 못 하는 학생들은 애초에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
부모가 공부를 잘했던 경험이 있으면,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것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업성취를 무엇이 결정하는가?'에 대한 많은 교육적 실험을 비롯하여 사회적 유전 등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을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학부모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구성하고 상호작용을 함에 있어서, 학업성취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공부를 잘했던 경험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학부모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많이 영향을 받게 되거나,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혹은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부모가 자녀에게 교육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그 영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판단할 만큼 통찰력을 갖추기 어렵다.
특히 대부분은 특정 목적에 의해 가공된 정보와 의견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정확히 모른 채로 적용하게 된다. 또 그 영향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영향 초기에 다른 누군가가 피드백 해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알기 어렵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자녀, 학생이 받게 된다.